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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ds, Poets and Philosophers

환상으로 위장한 위반의 흔적들

현실을 뒤집고 비틀다.

전시장을 마치 순정만화의 한 페이지처럼 만드는 김화현의 그림은 참으로 예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매우 예쁘다. 순정만화에 등장할 법한 이 꽃미남 캐릭터와 여성 중심 서사와의 관련성은 쉽게 짐작이 가능하다.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욕망과 판타지를 연령 불문하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예술 작품이나 대중문화 컨텐츠가 만연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여성을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해왔다. 판타지는 서서히 현실이 되었고 여성들은 그 틀 속에 자신을 구겨 넣었다. 여성이 욕망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판타지를 호명하는 것은 비현실을 추구하는 미성숙의 증거이자 힐난의 대상이었다. 그리하여 주체적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타자의 시선에 의해 대상화된 육체, 타자의 욕망을 위해 유혹하는 몸짓, 그저 예쁘기 위한 꽃 같은 존재는 늘 여성의 것이었다. 그러나 김화현은 이 시선과 욕망의 주도권을 뒤집어보고자 한다.
김화현의 그림에 등장하는 예쁜 남자는 현실의 인물이 아닌, 여성 판타지의 집결체이자 그 욕망 앞에 타자화된 가상의 존재 ‘X군’이다. 그는 가부장제의 위계와 질서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위반의 흔적과 전복의 시도를 담은 위험한 상징인 반면, 비현실적으로 예쁜 외모로 인해 시각적 위협감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때때로 강한 위협보다 태연하고 뻔뻔한 모습이 상대를 더욱 무력하게 만들 묘책이 되는 것처럼, 작가는 추방당해야 할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기존 사회 질서를 비웃는 방법을 택했다. 어쩌면 현실 세계가 배제하고자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가장 강한 위협일 테다.
또한 그들이 살고 있는 화폭이 그저 환상이 아니라 실제 세계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명작이나 유명 영화의 장면들을 차용하며, 섬세한 인물 표현을 더한다.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작가의 위트 안에서 우리는, 작가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을 화폭에 그려낸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진다. 그 혼란 속에서 우리가 현실과의 접점을 찾아낼 때마다 ‘X군’들은 자꾸만 틀을 깨고 나오며, 화폭 바깥의 세계는 위반의 흔적으로 물들어 간다.
작가가 동양화 작업에 만화적 형식을 취한 것 역시, 만화라는 하위문화에 대한 억압을 전복하려는 시도다. 순수예술보다 저급하다 여겨지며 예술의 울타리에서 배척당해온 만화, 그 중에서도 더 유치하다는 오해를 받는 순정만화의 형식은, 김화현의 화폭에서 중심을 차지하며 잃었던 명예를 되찾는다. 한편 작가는 실제 서양인과는 전혀 관련 없지만 순정 만화적 판타지 속에서 아름다운 서양 남자로 그려지고 소비되는 캐릭터들처럼, 현실의 서양과는 무관한 환상이나 이미지들을 차용함으로써 오리엔탈리즘을 비트는 시도까지 더하고 있다.

다양한 ‘선’의 시도
이러한 위반과 전복은, 2014년의 개인전 <Stolen Heart>와 2015년 <Phantastes’s Room>에서도 꾸준히 다뤄오던 것으로 이번 개인전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제다. 다만 기존에는 채색 위주의 작업을 했다면,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동양화 특유의 ‘선’이라는 요소를 중점적으로 다루며 형식적 부분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작가는, 재료를 쌓아서 이루는 서양화와는 정 반대인 동양화의 ‘선’이 가진 방향성과 속도, 그리고 힘을 나타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차용한 것이 중국 당나라 시대의 화가 오도자의 <군선도>인데, 채색 없이 백묘로만 이루어진 이 작품은 부드럽지만 정교하고 힘있는 선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김화현의 <군선도>에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고 힘있는 백묘 기법으로 신선들의 옷자락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다른 작품 <비너스의 탄생> 중앙의 인물을 좀 더 아련하게 표현한 선의 번짐, 순정만화의 효과선이나 일본 판화에 등장하는 물결선 등, 먹선으로 가능한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를 보여준다.
이 그림들은 먹선으로 드로잉한 뒤, 앞면의 은은한 하이라이트를 위한 뒷면의 채색, 다시 앞면 채색을 위한 아교포수 작업, 채색 작업, 그리고 뒷면에 종이를 덧붙이는 배접까지 수많은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서양화에 익숙한 우리 눈에는 언뜻 보기에 간단해 보이는 동양화지만, 그 엷고 은은한 그림 뒤에는 꼼꼼한 계산과 세심한 노동이 있다. 마치 김화현의 작품이, 처음 봤을 때 여성적 욕망의 발현이라고 쉽게 읽히는 듯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수많은 고민의 레이어를 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군선도>는 그 형식을 차용했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제 신선이 아니라 신선 복장을 한 ‘X군’들이다. 작가는 여전히 순정만화 스타일의 인물 표현으로 젠더의식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지속한다. 위반의 상징과도 같은 이 인물들이 아무렇지 않게 노니는 모습은, 마치 억압을 개의치 않고 이 현실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숨어 있는 재갈을 문 인물은 전통적 젠더의식 속 남성에게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모습으로서, 작가가 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문제의식을 더욱 직접적으로 상기시키는 존재다. 표면적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환상의 세계 아래에는 현실 세계의 전복을 시도하는 위험하고 불온한 기운이 깔려 있고, 어두운 그림자처럼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는 불편한 존재들 덕분에, 판타지를 바라보듯 그림을 감상하던 중 문득 이 세계의 불합리를 자각하게 된다.

이야기가 지속되기를
작가가 순정만화라는 형식을 차용한 이유는 여기서도 드러난다. 순정만화의 노스탤지어는 8-90년대의 가까운 과거를 향한 것으로, 당시 문화에 대한 평가가 많이 이루어지거나 고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든 쉽게 논하고 추억할 수 있다. 작가는 순정만화의 형식을 자신의 그림 속으로 옮겨 오면서, 이 가볍고 편안한 분위기까지 획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엄숙하고 무거운 예술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입을 연다. 순정만화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여성 자신의 욕망이나 환상에 대해 고백할 수도 있으며, 그것이 어떤 현상이나 의미에 대한 논의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 작가는 그 모든 이야기들이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의 감상처럼 편하고 쉽게 이야기되길 바란다.
작가의 저서 『위반의 집』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며 ‘옮기다’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자신이 어떤 현실에 대한 처방과 치료를 완결 짓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일종의 병적 증세와 같은 현상, 즉 실제 병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위험한 위반의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솔직한 대화와 자유로운 논의를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그는 어떤 명제나 결론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수많은 장치들을 세심히 마련하여 현실의 문제의식을 환기시키고, 관객이 직접 담론의 장을 열도록 이끌 뿐이다. 그리고 슬며시 보이는 위반의 흔적들을 눈치 챈 당신이 좀 더 쉽게 입술을 떼기를 기대한다. 이야기가 지속되어 끝내 가 닿는 곳은 이 세계의 불합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가 이야기를 불러 맥락과 덩어리가 단단해진다면 그림 속이 아닌 현실의 전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김화현의 그림은 환상의 껍질을 썼지만 사실 현실을 담았다. 오히려 환상인 듯 위장했기 때문에 더 적나라한 진실을 담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가부장제와 엄숙주의, 오리엔탈리즘만이 아니다. 타자를 지우고 배척하는 모든 것에 무감각한 이 세상에서, 부드럽고 은은하지만 태연자약하게 존재하는 ‘X군’들은 불온한 시도와 통쾌한 위반의 짙은 흔적들이다.

글. 김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