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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 out

현실과 상상의 완전한 구성

자신만의 동물원

현실은 이상향의 반대말이라서, 사람들은 현실 곳곳에 이상향을 대체할 무언가를 계획하곤 한다. 현실에서 절대 가능할 수 없으나, 잠시 가공할 수는 있는 어떤 시공간 말이다. 가령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소풍 떠나는 동물원이 그렇다.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소풍 장소 같지만, 그 안에서 마주하는 환경이란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본디 출생지가 아프리카 어느 사막이었을 사자 벽 너머로 저 멀리 추운 빙상 위에서 하얀 털을 기르고 있을 곰이 숨 쉬고 있는 풍경은 사실 얼마나 기괴한가. 이 모두는 단지 현실을 살아가던 누군가의 개인적인 목표와 욕구가 맞물려 만들어낸 현실화된 이상향이다. 어느 초원, 어느 사막, 어느 고지를 직접 찾아 돌아다닐 수는 없기에, 그렇지만 그들을 보고 싶은 꿈을 모조리 차단할 수는 없기에, 그래서 현실 속 어느 곳에 우리들의 상상을 한데 모아놓는 풍경인 것이다. 얼만큼의 일상과 얼만큼의 소풍, 얼만큼의 현실과 얼만큼의 상상은 매번 다르게 조절되고 구성된다.

작가 강민영은 첫 번째 개인전 <달콤한 포효>(2007) 이후로 벌써 십 년째 자신만의 동물원 혹은 식물원을 조직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매번 수많은 동물과 식물이 어울리지 않는 모습과 불가능한 구도로 등장한다. 우리가 동물원을 만들고 찾아가는 방식이 한층 강화된 세계인 셈이다. 구상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의 환상을 화폭 위에 옮기는 일이고, 추상적으로 말하자면 환상을 현실화시키는 경계점을 모색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설명은 결국 이 설명은 결국 생각을 표현하고, 생각과 표현의 간극이 주제라는 진부한 중언부언에 지나지 않을 테다. 그래서 작가는 필연적으로 그동안 자신이 벌여온 집중과 집착으로 일군 끝없는 환상이, 일상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동물원과 다르다는 점을 증명할 책임이 생긴다. 따라서 이번 갤러리 구에서의 전시는 그동안 강민영의 노력을 갈무리해 어느 정도의 결론과 지향점을 보여주고, 환상과 현실이라는 오랜 미술사적 주제가 어떻게 오늘날 강민영 식대로 번안되고 표현되는지를 살피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상향을 구성하는 법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작업세계는 그의 작업방식을 이분화해 생각할 때 좀 더 쉽게 와닿는다. 간단히 말해 작가는 동식물을 재료로써 팔레트에 수집하는 ‘환상’에 집중하는 과정을 거친 다음, 그렇게 수집된 재료들을 가지고 화폭이라는 ‘현실’ 속에 이모저모 배치하고 구성해 넣는 방식을 따르고 있는데, 두 단계는 앞서 말한 ‘환상과 현실’이라는 미술사적 주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개념어로 대치 가능하다. 또한 일련의 절차는 그 틀을 유지한 채 작품에 따라서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 교과서적으로 보이는 이 과정의 완급 조절을 어떻게 하는지를 보면 작가의 관심사와 특기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이렇다. 지금까지 작가는 자신이 꽂힌 동식물을 찾아, 그들의 생김새를 더욱 파격적으로 변형하는 데에 힘을 꽤나 쓴 바 있는데, 전시하는 근래 작품들에서는 등장하는 이들을 반복적으로 출현시킴으로써, 오히려 종의 다양성을 줄이고 있다. 달리 말해 2009년 개인전 작가 노트에서 상술하듯 “지긋지긋한 현실을 이끌어 나가는 일종의 원동력”을 위하여 “자유롭고 일탈적인”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이 전자로서 노력하기보다, 후자, 즉 이미 모아진 그들을 배치하는 데에 초점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새롭거나 기괴한 혹은 관능적이거나 오묘한 재료를 찾아내는 것보다 이제 강민영에게 중요한 건 그들을 배치하는 방식에 가까워졌다. 이전 작업이 우리가 경험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던 동물원 속 동물 하나하나를 꼽아 따라가는 미시적 접근에 가까웠더라면, 오늘날에는 이제 그러한 노력을 넘어서 전체 판을 그리는 것으로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레이아웃>이라는 전시 제목은 이러한 작가의 최근 관심사와 특기의 연장선에 위치한다. 물론 어느 때나 동식물을 골라 구성하고 배치해왔지만, 이번처럼 종의 다양성을 줄여 구성과 배치에 집중하는 건, ‘레이아웃’, 즉 캔버스 크기를 한정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집어넣는 캐릭터 또한 지정함으로써, ‘들어가야 할 내용’과 ‘들어갈 수 있는 배경’이라는 한계 설정을 명확히 하는 구성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일종의 한계치를 스스로 설정하는 점 역시, 무작정 현실의 대립항으로서 이상향을 그리던 과거와 달리, 작가가 그리는 이상향, 환상의 세계에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감안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현실성이란 작가가 이미 만들어낸 환상적인 동식물에 기초하기 때문에, ‘현실 → 이상 → 현실로의 회귀’라기보다는 ‘현실 → 이상 → 이상 속 현실’을 가리킨다)

현실 도피를 위해 들어가야 마땅한 캐릭터를 창조해야 하는 동시에 그런 세상에서 또한 한계를 명시하기. <레이아웃>에서 소개되는 근작은 그렇게 구성된다. 환상을 해치지 않기 위해 캐릭터들의 자세나 구도는 한사코 그대로 둔 채, 한정된 세상에 맞추기 위해 크기를 조정하여, 자동으로 다시점 풍경으로 전체 구도를 잡는다. 그리고 이미 이상향 속에 등장한다는 지위를 갖춘 동식물들은 더이상 개체적으로 설명되기보다, 전체 안에서 ‘함께 있을 수 없는’ 다른 개체들과 맞물리며 ‘함께 있을 수 있는’ 균형을 찾아나서고 있다. 얼만큼의 현실과 얼만큼의 상상. 작가가 전제한 한계치로 인해 그림 세계에는 강한 긴장이 차기 시작한다. 과연 원숭이보다 작은 코끼리는 그 크기가 적당해 보이고, 당장 표범 앞에 앉아있는 새는 그 자리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머물러있다. 한번 이상향에서 표백된 현실 동식물들은 더이상 현실이나 이상의 한계가 아니라 그림 내에서의 규칙만을 따라간다.

전체로서의 풍경

엄격하게 구성된 배치는 어떤 율동감이나 내러티브를 따로 만들어내지 않고, 하나의 독자적인 세상으로 존재한다. 더이상 반대편의 현실이나 반대편의 이상향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 자기만의 시공간이 연출되는 것이다. 특히나 일련의 캐릭터들이 완벽한 제자리를 찾았기 때문에, 나머지 여백 또한 완벽한 제자리를 차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낸다. 강민영 작가의 작업에서 풍경이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이 사라지고 모든 게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전체로서의 풍경에 가깝다. 여느 동물원의 내러티브처럼, 이상향을 상징하는 캐릭터 하나하나를 주목시키지 않아,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작가가 찾은 완전한 풍경이 만들어진다. 어딘가 변형된 기괴한 동식물은 제자리를 찾아 어디에서 본 듯한 묘한 기시감을 주고, 동시에 드러나는 배경은 뚜렷한 양감을 가진 채 자신만의 존재감을 선보인다. (빈틈없이 채워진 배경과, 새하얗게 비워진 배경은 형태적으로도 차이를 드러내며 각자의 뚜렷한 특징을 보이기도 한다)

사실적인 원근법은커녕 각각 크기 조정만을 통해 그들에게 존재성을 부여하되, 도무지 움직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구도로 각각을 배치함으로써 ‘한 장’의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더이상 캐릭터 하나하나에 몰입하지 못하고 전체를 의식하며 자꾸만 옆에 있는 다른 배경과 캐릭터를 신경 쓰게 된다. 드넓은 풍경이 만들어졌지만 누구 하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은 전체로서의 풍경은, 강한 레이아웃으로 인해 그 어떤 상상력을 막아 세웠기 때문이다. 상상이 멈춰선 환상세계에서 우리는 이곳이 현실이 절대 아니라는 부정과 함께, 이상향으로 인정하지는 못한다. 우리는 언제나 지나치게 상상하거나, 지나치게 현실에 몰입하곤 하는데, 너무나 명확한 구성력으로 인해 이곳에는 그 어떤 이야기가 아닌 단 하나의 풍경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얼만큼의 상상과 얼만큼의 현실을 완전하게 구성해낸 강민영의 레이아웃에서 우리는 단지 바라볼 뿐이다.

최나욱(미술 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