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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MONIA

HARMONIA 김윤관, 이정석, 정윤경

서양에서는 고대로부터 아름다움을 인식하기 위한 덕목으로서의 ‘조화로움’에 주목했다. 비례, 균형과 같은 개념과 함께 모든 예술에서 조화가 이루어져야 아름답고 온전한 것이 된다고 여겨졌다. 또한, 사물과 영혼 사이, 사물의 본성 혹은 본질에 일치할 때 주어지는 미덕으로도 이해되었다. 르네상스에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미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으며 예술은 미를 본질로 하는 활동으로서 일종의 지식, 과학이 되었다. 선구적인 당대의 예술이론가 알베르티는(L.B.Alberti) 예술가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디세뇨(Disegno) 즉 정신이 행하는 설계를 통해 이성과 경험의 도움으로 창조물을 제작한다고 보았다. 예술가의 생각은 마음에서 오고 지식은 경험에서, 선택은 판단에서, 나머지는 기법을 통해 온다고 했다. 여기에 3명의 예술가가 있다. 각기 다른 재료를 통해 자신만의 디세뇨를 구현해낸다. 목가구, 도예, 회화라는 다른 장르에서 고도의 테크닉을 성취하였음에도 화려함으로 채우기보다 섬세한 감각으로 적절히 절제하는 듯 미적 조화로움을 구현해냈다. 동양에서의 조화는 내부와 외부, 인간과 자연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해된다. 자연이 작가의 감정에 영향을 주고, 작품에 영향을 미치며, 작가의 감정은 반대로 자연경물을 변화시켜 작품의 정취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으로 발전했다. 목수 김윤관은 나무에서, 도예가 이정석은 흙에서, 회화작가인 정윤경은 나뭇잎과 깃털을 닮은 모티프에서 읽어낸 세계와의 깊은 교감을 창조적으로 드러낸다. 깊은 이해에서 비롯한 절제의 순간과 물성에 대한 깊은 배려 그리고 충동적인 힘을 다루는 내적 깊이가 느껴진다. 각자의 디세뇨를 통해 창조된 소우주가 각자의 미적 궤도를 운행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가의 독자적인 창조물로서의 소우주들이 만나서 이루는 조화로운 세계가 어떻게 가능한지 세계들의 내적 조화는 가능한 것인지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김윤관_목가구
김윤관은 조선의 절제 된 미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목가구를 만든다. 나무의 물성에 대한 이해와 숙련된 기술로 나뭇결 자체의 아름다움을 품위 있게 드러낸다. 그는 제작과정 중에서 적절한 순간에 정지하여 장식적 요소들은 최소화하고 형태의 균형과 공예적 완성도를 추구한다. 그의 가구가 가진 특징이 대칭에서 오는 균형과 적절한 비례에서 오는 안정감이다. 일상 속의 가구의 형태가 지닌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보다 색다른 미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전체를 조율하면서도 절제하는 에너지가 담긴 정서적인 효과일 것이다. 생명을 지녔던 자연의 소재가 인간이 연마한 테크닉을 통해 생활 속으로 들어왔을 때 비로소 드러내는 힘의 조화를 이루어 안정감과 편안함을 준다.

이정석_도예
연질의 돌을 분쇄한 흙에 물을 더하여 사람의 손으로 형태를 빚은 다음, 고온의 가마에서 도자기를 제작하는 과정은 역설적이게도 흙을 원래의 물성인 돌로 회복시키는 길이다. 작가는 자연의 구성요소로서의 흙이 공예품으로 탄생하며 잃어버리는 물질성에 질문을 던진다. 이에 전통에 역행하는 반공예적 제스쳐를 취한다. 즉, 흙속의 수분을 건조시키는 과정과는 반대로 흙의 표면을 물로 침식시켜나간다. 도자기의 숙명인 생활세계를 벗어나 재료자체의 물질적 본성을 극대화하여 사물화 하는 것이다. 흙을 집적시켜 성형한 도자기의 표면을 반대로 한 겹 씩 벗겨내면서 물적 본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도자기의 밀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흙(土)’이라는 물성이 ‘물(水)’과 이루는 역학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깊이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불안정한 모습을 한 도자기를 통해 유약함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너무나 연약해서 당장이라도 깨질 것 같은 속성들이 때론 오히려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하고 대립을 상쇄시켜 화합으로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 되기도 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얼마든지 찾아온다.

정윤경_회화
약간은 그을린 듯한 캔버스 위에 깃털 혹은 나뭇잎을 닮은 모티브들이 일군의 집단을 만들어 내며 그 힘이 터져버릴 기세로 만들어내는 작가의 추상은 그 자체로 역동적인 생명이다. 정윤경은 항상 관계들 사이에 존재하는 힘과 대립적 모순에 주목해왔다. 생성과 파괴, 비움과 채움. 질서와 자유분방함 사이에 내재하는 긴장과 균형감을 건축적인 화면 구성을 통해 설득력 있게 펼쳐낸다. 삶의 격렬함과 고요한 비움 사이의 긴장감, 구조와 카오스사이에 존재하는 리듬감, 갈망하듯 끓어오르다가도 곧 소강해버리는 에너지가 물리적인 세계의 유한과 무한의 법칙을 드러내기도 한다. 현대의 개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의 감각적 세계를 회화적으로 전달하는데 유능하다. 인간이라는 조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이 캔버스 프레임에서 일어나는 풍경을 닮았다. 작가가 늘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은 이 수많은 대립들안에서 균형추를 가지고 조화를 이끌어내는 중간자로서의 인간, 생명의 에너지를 있는 그대로 터뜨리면서 조율해나가는 지혜로움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한다.